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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이 밥 먹여주니?
네, 먹여줍니다.
2022년 1월 19일
‘덕질이 밥 먹여주냐’라는 조롱을 받던 팬 문화가 변화했다.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행위를 넘어 문화 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 ‘덕후’들. 그들이 실제로 누군가의 밥을 먹여주고 있다. K-POP의 인기와 함께 성장하는 한국의 팬 문화. 그 속을 들여다보자.




나는 ‘덕후’다
‘덕후’라는 말은 일본어 ‘오타쿠(オタク)’에서 시작됐다. 오타쿠는 특정 대상에 몰입하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오덕후’라는 말로 바뀌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팬을 부르는 말이 됐다. 2010년대 초반, 덕후로 줄여지며 장르 관계없이 무언가 또는 누군가의 팬을 부르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팬 활동을 지칭하는 말로, ‘~질’을 붙여 자조가 섞인 ‘팬질’이라던 표현도 ‘덕질’로 변화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게 어색할 정도로 덕후와 덕질은 어느새 익숙한 단어가 됐다. 폐쇄적인 팬 문화에서만 사용되던 말들이 어느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비밀 같은 신조어를 사용하던 온라인 위주의 마이너 문화가 어떻게 주류 문화에 흡수됐을까?

과거에는 팬을 ‘빠순이’라고 부르며 깎아내리는 시선이 있었다. 지금은 ‘성공한 덕후’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팬 문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을 문화 향유로 인식하게 됐다.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와 문화가 다양해지고, 취미와 여가의 범주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 취미를 만들고 무언가에 몰입해 좋아하는 일을 더 이상 특이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최근에는 자신이 덕후인 걸 숨기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은밀한 취미 같던 덕질이 일종의 문화생활이 됐다. 소수의 것이었던 팬 문화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15년 MBC 예능 <능력자들>은 특정 분야의 덕후를 소개하며 그들이 애정을 바탕으로 쌓은 지식을 소개했다. 애니메이션이나 연예인을 외에 버스 덕후, 밀리터리 덕후 등 다양한 분야를 다뤘다.


덕후가 만드는 자체 콘텐츠
여러 분야의 덕후가 있지만, 덕후라는 말이 표방하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K-POP(이하 케이팝) 팬들이다. 한국의 케이팝 팬 문화는 90년대 후반,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며 커지기 시작했다. 한류, 케이팝의 성장과 함께 독특한 팬 문화가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팬들이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최애’를 홍보하는 것이다. ‘직캠’과 직캠을 찍는 ‘홈마(Homepage Master)’ 문화 등 팬이 자체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응원 광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애의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꾸민 카페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전시회까지 열기도 한다. 팬이 직접 2차 콘텐츠를 만들고 즐기는 상황에서 팬을 따르는 팬, 팬의 팬이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팬 문화가 대중문화 밖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팬들이 최애의 생일을 기념하며 주로 여성이나 소수자 단체 혹은 연예인의 활동과 관련 있는 곳에 그의 이름으로 기부를 한다. 새롭고 신기한 문화에 이질감이 들 수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에 따뜻한 손길을 전하는 일은 다른 어느 것보다 큰 의미가 있다.



▶ 사진 출처_디어유, 위버스, 유니버스 공식 홈페이지

밥 먹여주는 덕질
케이팝 시장이 말 그대로 ‘폭풍 성장’ 중이다. 전 세계 케이팝 팬은 1억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관련 산업은 8조 원대 규모로 추정한다. 시장의 규모가 세계적으로 커지면서 팬 산업(Fan Industry)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앨범에 포토 카드나 화보 등을 넣는 것 외에도 앨범 발매나 공연과 함께 한정판 굿즈도 판매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굿즈인 응원봉은 기본이며 스티커, 키링, 의류, 뱃지 등 종류가 다양하다. 공식 판매처 외에 팬이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굿즈도 셀 수 없이 많다.

팬 산업은 굿즈를 넘어 콘텐츠 산업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연예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팬 플랫폼인 위버스, 디어유, 유니버스 등이 등장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SM 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디어유는 지난 11월 코스닥에 상장했고, 해외 서비스를 시작하며 시장을 더욱 넓히고 있다.

‘덕질이 밥 먹여주냐’라던 조롱이 현실이 됐다. 소비를 통해 한 산업을 지탱하고, 누군가의 밥을 먹여주는 것을 넘어 나의 밥을 찾아 먹을 수도 있으니, 정말 덕질이 밥 먹여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랑은 죄가 없다
팬이 산업을 이끄는 문화 소비자가 되기도 하지만, 대중문화의 특성상 연예인 등 덕질 대상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탈덕(덕질을 그만둠)’ 당하기도 한다. 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은 그런 현상을 블랙 코미디로 담았다. 감독은 방송에서 소개될 정도로 열렬한 정준영의 팬이었다. 그러나 그의 범죄로 탈덕 ‘당했고’, 팬이었던 과거는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는 ‘흑역사’가 됐다. 이런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는 팬 문화와 그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를 사회적인 시선으로 분석했다. 다양한 분야의 팬들에게서 뜨거운 인기를 끌며 영화제 상영마다 매진 행렬이 이어졌고, 올 1월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더는 소수가 아닌 각지의 팬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공감하며 또 다른 예술 콘텐츠를 만들어 간다.

이제 팬은 단순한 문화 소비를 넘어 문화의 흐름을 이끄는 주체가 됐다.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면 어떤 팬들은 ‘사랑은 죄가 없다’라고 말한다. 대중문화의 팬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접할 뿐, 그 이면의 실제 모습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회적 문제가 되거나 심각하게는 범죄까지 이어지는 무언가를 좋아했던 과거에 죄책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문화 산업을 이끄는 주체로 문화 생산자에 쓴소리를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팬 문화는 이미 단순한 응원을 넘어섰다. 팬들의 응원과 홍보 덕분에 인기를 얻고, 연예인이나 아이돌 그룹 자체가 브랜드가 되고 있다. 이제 덕질은 거대한 산업으로, 무시할 수 없는 소비 시장이 되었기에 대중문화의 굴레가 더욱더 복잡해지고 있다. 성장하는 팬 문화의 최애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해갈지, 대중문화는 이런 팬 산업을 어떻게 해석하고 지켜볼지 덕후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김혜정 기자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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