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뒤에 드러난
주거 불평등
2022년 10월 6일
지난여름, 인명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매서웠던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아직 생생하다. 반지하 집에 들어차는 물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20년 안에 서울 시내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주거 불평등 문제는 보고 말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사회 주거 불평등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대도시의 이면, 반지하

반지하는 대한민국과 역사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피와 참호 기능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다. 1970~80년대 이후 서울로 사람이 몰리며 거주 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에 알려진 한국 반지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영화 평은 과장이 아니었다. 폭우에 맞닥뜨린 재난은 공포스러울 만큼 영화와 닮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붓던 비에 잠긴 곳이 속출하며 많은 이재민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중 반지하 주택으로 밀려드는 물을 피하지 못하고 일가족 3명이 사망하는 사건으로 주거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 문제가 대두됐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반지하 주거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8월 10일, 서울시는 20년 이내에 지하와 반지하를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 가구를 억지로 금지하거나 퇴출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는 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이미 2000년 건축법 개정과 2018년 <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반지하 건축은 사실상 금지된 상태다. 게다가 서울시는 이번 반지하 일몰제 선언과 비슷한 대책을 내놓은 적 있다. 2010년 폭우 이후 상습 침수 지역에 대한 반지하 주택 건축허가제한을 추진해온 것. 과거 정책을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답습한다는 비판에 서울시는 2012년 이후 새로운 반지하 주택이 약 4만 호 건축됐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다르다. 창고나 보일러실 등 거주 목적이 아닌 공간까지 모두 포함한 수이기 때문. 이처럼 반지하 거주 가구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서울 내 반지하 가구는 전체의 약 5%, 20만 정도로 추정한다. 2020년 기준 전국 반지하 가구를 약 33만 호로 보는 것을 고려하면 60%가 서울에 몰려있는 셈이다. 대도시 거주 환경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다.



생존이 우선인데 지원은 뒤로?

사람 생존이 우선이라며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선언했지만 반지하 거주자에게는 집에서 쫓아내겠다는 통보로 들린다. 누구나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바란다. 그러나 현실적 방법을 찾기 어려운 이에게 마땅한 대안 없이 ‘실시하겠다’는 선언은 주거 취약 계층을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 뿐이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지하(반지하) 및 옥상(옥탑) 거주 비율은 29세 이하가 2.8%로 가장 높았으며, 60대 2.0%, 50대 1.9%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반지하나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청년은 37.7%에 달한다. 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법적으로 취약주거형태에 해당한다. 이번 폭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주거 취약 청년을 대상으로 이사비 지원 정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조건에 해당하더라도 모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원 횟수도 생애 1회에 한한다. 비용은 최대 40만 원 한도 내에서 실제 사용한 만큼만 지원한다. 일시적 도움은 될 수 있겠으나 주거 환경 개선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듬해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도 크게 줄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8월 30일 발표한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15조 1천억 원으로, 올해 대비 30%나 삭감됐다. 매년 10만 호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공약과 달리 예산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어디서든 안전한 삶의 터전을

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법적 취약주거형태를 소위 ‘지옥고’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름부터 무섭다. 앞서 말한 이사비 지원과 주거급여 등 주거 취약 계층이 이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정책은 이미 존재하지만 효용은 미비한 수준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한 달에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약 30만 원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은 주거지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주거지를 옮기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어디서든 안전한 삶의 터전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지난여름 폭우는 이미 큰 피해가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사전 조치가 부족했다. 배수로를 점검하지 않아 길을 가던 시민이 역류하는 하수구 쓰레기를 손으로 퍼냈다는 소식도 들렸다. 모래주머니는 부족했으며 방수벽과 물막이판 설치 지원도 지자체마다 제각각이었다. 충분히 대비했더라면 인명 사고는 피했을 거란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물론 점검하고 대비해도 피할 수 없는 재난이 존재한다. 특히 이번 폭우는 기후 위기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모두가, 특히 거대 기업 등이 더욱 책임져야 할 기후 위기 피해는 취약 계층부터 찾아갔다. 이런 점에서 ‘기후 불평등’이라 부르기도 한다.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기후 불평등과 주거 불평등이라는 민낯이 드러났다. 앞으로 재난은 더욱 피할 수 없어질지 모른다. 결국 모두가 어떤 곳에서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궁극적 목표다.
CREDIT
김혜정 기자

#김혜정 기자
추천기사


(주)인투인미디어 | 대표자 : 문기숙 | E-mail : campl@intoinmedia.com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로 21길 26 1203호 | TEL. : 02-2233-4015 / 070-4352-0423
사업자등록번호 : 201-86-21825 | 직업정보제공 사업신고번호 : J1204220140006

COPYRIGHT(c) 2020 CAMPUS PLU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