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몸에
흔적을 남긴다
2022년 4월 15일

강렬한 경험은 당시 상황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발을 담갔던 파도의 촉감, 엄마 손을 잡고 애니메이션을 보러 갔던 영화관의 따뜻한 팝콘 냄새, 설렘과 걱정이 가득한 채로 입었던 첫 교복의 질감까지. 냄새와 촉감, 옷은 기억의 흔적이 된다. 나에게는 그런 4월의 캠퍼스 추억 두 가지가 있다.

어느 4월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맣게 입은 것도 모자라 가방까지 검정색으로 들고, 경상관 앞 만개한 벚나무 아래에서 당시 유행하던 ‘아날로그 파리’ 필터로 사진을 찍었다. 어떤 날엔 봄과 닮은 노랗고 빨간 꽃이 잔뜩 그려진 원피스를 입었다. 그날 옷차림을 기억하는 것 또한 내게 남은 흔적이다.

또 다른 4월의 어느 날, 1교시부터 이어진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나자마자 학식을 먹기 위해 1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줄어드는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고 있었고, 함께 수업을 듣고 나온 친구들은 세상과 단절됐던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놓칠 수 없어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다.

“제주도로 가던 배가 침몰했대.”

그 배는 엄청 큰 유람선 아닌가? 그 큰 배가 침몰할 수 있나? 배가 침몰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 흥행했던 영화 줄거리로만 들어봤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거대한 배가 머리만 남은 채 바다로 잠기고 있었다. 얼마나 큰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던 찰나의 순간, 친구가 말을 이었다. “아, 사람들은 다 구했대.” 엘리베이터와 함께 떨어져 내릴뻔한 심장을 겨우 받쳐 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해 4월, 우리는 따뜻한 빛과 바다를 보며 실컷 울 수조차 없는 병을 앓았다.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빈 강의실에 모여 앉았지만 스크린에는 실시간 뉴스 속보를 띄워뒀다. 공부하기 싫다며 투덜대지도 않았고, 가끔 뉴스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훌쩍이는 소리를 내곤 했다. 훌쩍임이 꽃가루 알레르기 탓이 아닌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지금도 그때가 생생하다. 그런 기억은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진다. 슬프고 안타까운 기억이라 지우려 하는 건, 글쎄. 우리는 모든 걸 경험으로 배운다. 파도가 밀려오면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 영화관에선 떠들 수 없다는 것, 교복은 편한 게 최고라는 것. 이런 사소한 일상도 직접 경험하고 배우며 자랐다. 그날의 사고로 우리는 안전이 무엇인지, 책임과 신뢰는 무엇인지 뼈저리게 배웠다. 이토록 중요한 것이 흔적을 남긴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부채감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으로 갚아야 한다. 추모의 마음을 담아 다시금 기억의 흉터를 되새겨본다.
CREDIT
김혜정 기자

#김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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