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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호
사회학 교수 이나영
페미니즘, 억압을 인지한 세대의 새 물결 사회학 교수 이나영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나혜석은 이런 말을 했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그와 같은 마음으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외쳐온 사람, 이나영 사회학 교수를 만났다.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현주소, 어디쯤일까요?
곳곳에서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면서 여성 인권이 높아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허상이고 허구예요. 안타깝게도 지난 10년간 개선된 부분이 없어요. 세계적 인권 지표 혹은 성평등 지표를 살펴봤을 때 우리나라 여성의 인권은 아직 낮은 수준입니다. 겉으로만 평등하고 공정하게 보일 뿐이죠. 얼마 전 터진 은행들의 성차별 채용비리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노동 시장에 여성은 늘 남성보다 불안정하게 진입했어요. 비정규직=여성 문제라고 할 만큼이요. 여기에 남녀 임금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 전면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성 인권 향상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개선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 원인을 캐서 뿌리를 없애야 합니다.

성폭력을 ‘개인의 잘못’으로 보는 시각과 ‘젠더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성 관련 범죄나 문제는 이상하게 피해자에게 낙인이 찍혀요.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서, 옷을 짧게 입어서, 처신을 잘못해서 그런 일이 생긴 거라고요. 그래서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해도 자책하기 바빴고, 수치스러워서 어디다 말도 못했어요. 이게 바로 남성중심사회에서 성폭력을 대하는 관행이었죠. 하지만 그건 절대 여성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조심해도 당하는 사람이 있고 문제가 생기잖아요. 모든 여성이 성폭력을 경험했다면 그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죠. 여성과 남성이 수평적이지 않다보니 젠더 자체가 권력관계가 된 거고, 그래서 성차별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으니 해결이 안 되는 거고요. 그래서 성폭력이 젠더 권력관계에서 나온다는 걸 강조하고자 ‘권력형 성폭력’이라고 표현한 건데, 일부 사람들이 조직 내 상하 관계에 따른 성폭력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더라고요. 그 논리라면 동료나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돌보는 환자에게 성폭력 당한 경우는 설명할 수 없겠죠. 물론 젠더 권력 위에 계층이나 지위에 따른 권력이 더 붙어 피해가 심화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여성에게 가중되는 고통은 클 수밖에 없고요.

현재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교수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지금 SNS와 광장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성 대부분은 체계적으로 여성학을 배우거나, 관련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일상에서 옳지 않은 상황을 겪으며 차별과 억압을 인지했고, 이젠 그걸 뿌리 뽑고 싶은 거죠. 이 모임의 핵심은 평소 모르는 사이로 흩어져 살다가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가치와 맞으면 유연하게 연대한다는 거예요. 그러다 의견이 다르면 또 헤어지고요. 이 목소리가 듣기 싫은 이들이 페미니즘 집단을 특정 악마 집단 또는 변이된 페미니즘 조직으로 보는 거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거기다가 언어가 과격하다, 남성들을 함께 데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하는데, 약자가 어떻게 강자를 설득하겠어요. 노동자가 대기업 대표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거의 기적이죠. 권력은 공기와 같아서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얘기해줘도 잘 몰라요. 불편한 상황을 겪어봐야 깨닫는 거죠. 그래서 나온 게 미러링이에요. 네가 무슨 일을 했고 여성들이 왜 분노하는지 느껴보라는 거죠. 이를 두고 왜 남성 혐오하냐고들 하는데, 미러링은 거울이라 원본이 필수예요. 그들이 먼저 시작했고, 그들이 하지 않으면 사라져요. 하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죠. 그러니 미러링도 사라질 수 없는 거예요.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거나 관련 글을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사회·정치적 변화에 따라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느껴 반발하는 거예요. 이걸 백래시 현상이라고 해요. 일종의 자기 보호죠. 최근 가장 두드러진 백래시는 ‘펜스룰’이에요.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아내 없이 다른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에서 유래됐죠. 마치 새로운 문화처럼 쓰고 있는데 아주 예전부터 있던 현상이에요.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고정관념과 유리천장 등 한국 여성들의 오랜 차별 역사에 늘 펜스룰이 있었어요. 심지어 1898년 한국 최초 여성인권선언서 <여권통문>에도 나와요. 여성도 교육 받고 직업 갖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거든요. 이제 와 새삼스럽게 새 단어를 만든 것뿐, 사회는 늘 여성의 자리가 따로 있다고 얘기해왔었어요. 다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성폭력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거죠.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데 여자만 조심하면 된다는 그 생각, 너무나 무지막지한 일이에요.


최근 발생한 홍대 몰카 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셨나요?
사실 사건 발생 며칠 뒤 가해자가 포토라인에 선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여성들이 디지털 성폭력 증거를 모아 신고하면 인력이 없다고 하거나, 가해자가 붙잡혔다가도 금세 불기소처분으로 나왔었거든요. 경찰, 검찰, 언론이 그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보여준 거예요. 여성 입장에선 너무나 황당하고 열 받는 일이죠. 불법 음란 사이트 소라넷이 폐쇄되기까지 16년이 걸렸는데, 여성의 몸을 소비하고 착취하고 폭력의 대상으로 두는 동안 방치된 거잖아요. 결국 여성은 몰카와 음란물의 대상이지,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거예요. 또 여성이 피해자일 때는 야동 사이트 검색 순위에 올라요. 이번 피팅 모델 사건만 봐도 그렇죠. 반대로 남성이 피해자가 되니까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 뜨고, 어떤 낙인 없이 진짜 피해자로 여겨요. 더구나 포르노로 소비되지도 않죠. 성별만 다를 뿐인데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되어 있는 거예요. 이러니 여성들이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요.

이후 성평등 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1990년대 초 여성 관련 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이면서, 성폭력과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었어요. 성폭력특별법이나 가정폭력특별법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죠. 이후 가라앉은 듯 보였던 성평등 운동이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다시 떠올랐고, 페미니즘 확산과 미투 운동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당분간 이 물결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봐요. 특정 조직이나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각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이걸 어떻게 통제하겠어요.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게 됐는데 어떻게 과거로 다시 돌아가겠어요. 새롭게 등장한 이 세대는 계속 성장할 테고, 세상은 많이 달라질 거예요. 또 30년 전만 해도 여성은 공부할 필요 없다며 학교도 못 가게 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이 변화도 그때의 여성들이 투쟁해서 이뤄낸 성과예요. 그때가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있듯, 지금의 성평등 운동이 분명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 낼 거예요. 물론 이 파도가 다시 잠잠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요. 여성 인권을 향한, 성평등을 위한 목소리는 다시 들려올 거고, 또 다음 세대가 나타날 거니까요.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을 들려주세요.
제 세대에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강고한 남성중심체계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다 한다면 다음 세대는 분명 무너뜨릴 힘을 갖게 될 거예요. 그래서 현재로서는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과 어떤 운동이든 함께 해 나가는 게 제 목표예요. 연구자로서는 성평등 운동에 필요한 이론을 뒷받침해주고, 운동에서는 전선에 나서서 기성세대에게 말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또 우리의 여성 운동을 더 많이 기록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래야 다음 세대가 우리의 흔적을 쫓으며 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고 확대·발전시킬 거라고 믿어요.


사회학 교수 이나영

연혁
前 중앙대학교 인권센터 제1대 인권센터장
現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
現 한국여성학회 이사
現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 이사
現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저서
『젠더와 사회』/ 동녘
『2015 위안부 합의 이대로는 안 된다』/ 경인문화사
『여성주의 역사쓰기, 구술사 연구방법』/ 아르케
『다시 보는 미디어와 젠더』/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방송 강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39회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905회
KBS1 명견만리 시즌2 7회
취재_임수연 기자, 김민솔 학생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