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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호
셋. 수강철회 모먼트!
수강철회 모먼트! 날 충격에 빠뜨린 시험 문제들
강의계획서에는 분명 없었는데 교수님께 제대로 속은 기분. 처음 봤을 때는 입을 틀어막고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다음에는 수강철회 충동이 들었지만, 이제는 약간 추억이 된 것도 같은, 아주 특별한 시험 문제들.


교양 철학으로의 초대

Q.
앞에 있는 교수가 마음을 가진 존재인지
증명하시오.

전날 밤을 새운 보람이 있었는지 앞면의 빈칸을 다 채우고, 시험지를 뒤집었을 때 이 문제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못 본 척하고 싶었고, 그 다음으론 왠지 무조건 마음이 있다고 써야 할 것 같아서 우선 그렇게 한 줄을 완성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B4 용지의 나머지 반을 채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교수님께 사죄 편지를 써서 측은지심을 발동시킨다면 교수님이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만약 교수님이 맹자의 성선설이 아니라 순자의 성악설 입장에 가까우시다면? 나는 마음이 있는 존재니까 다음 학기 수강신청 때 이 초대 거절하라고 동기에게 말해주어야 겠다.
사진출처_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


교양 스페인 문화와 예술

Q.
스페인
4박 5일 여행 계획을
제출하세요.

지난 여름방학 때 일본 여행 계획을 친구에게 다 떠넘겼던 게 이렇게 돌아오나 싶었다. 여행 테마를 가우디로 정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수업을 듣던 나머지 79명의 학생들도 그랬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우디의 카사 밀라와 가우디의 구엘 공원과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의... 가우디님께 이렇게 받기만 해도 괜찮을까. 구글 스트리트 뷰로만 봐도 이렇게 아름다우니까 한 곳에 3시간씩 구경해도 아무 문제없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며, 4박 5일 동안 밥도 안 먹고 건축물만 보러 다니는 노답 여행 계획을 제출하는 것으로 랜선 스페인 여행은 끝이 났다. 교수님, 그리고 여행 계획 떠넘겼던 친구야.
Lo siento!(미안합니다)
사진출처_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교양 디자인과 생활

Q.
나무젓가락으로
가장 튼튼한 다리를
디자인하세요.

교수님, 이런 과제를 내주실 거면 과목명에 설계를 넣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다리를 예쁘게 꾸미는 강의인 줄 알고 들어왔거든요. 나무젓가락으로 다리를 세우면서 처음에는 이게 3초라도 버틸까 싶었지만, 다리가 그럴듯한 모양이 될수록 이상한 승부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강 철교를 흉내 내서 트러스 구조(건축과 만세!)로 완성한 우리 다리는 최종 조를 정할 때까지 살아남아주었고 물을 담은 양동이로 결판이 나지 않아서 소화기까지 매단 끝에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우리 한강이(다리의 이름이 되었다)는 트러스 구조를 생각해 낸 건축과 조원이 가져가서 과방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해피엔딩~
사진출처_ 영화 ‘김씨표류기’


화학공학과 공정모델링

Q.
술에
불을 붙여보세요.

꿀잼 과제라고 생각했다. 술 위에 그냥 불을 붙이면 붙지 않지만, 국자에 담아 아래를 가열하면 농도가 높아져서 불이 붙는다는 걸 실험으로 할 때는. 그 수업에 들어오기 5시간 전까지 함께했던 소주와 맥주, 그리고 칵테일을 실험실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바텐더처럼 멋지게 불 쇼를 보여준 교수님은 “조별로 각 주류가 몇 도에서 불이 붙는지 도출해오세요.”라는 말로 여기가 공대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셨다. 그 말은 나 대신 수식을 반복 계산할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는 뜻이었다. 실험실은 순식간에 특성화고 출신 조원을 섭외하려는 경매장으로 변했다. 점심 3번으로 낙찰된 동기를 보며 쓸쓸히 생각했다. 엄마, 먹고살려면 영어보다 C언어를 배웠어야 했나 봐!
사진출처_ 영화 ‘위대한 개츠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영화전략론

Q.
올해의 롱패딩 열풍 이유에
대해 인터뷰를 해오세요,
바로 지금.

예정에 없던 과제를 받고 갑자기 강의실 밖으로 떠밀려 나왔을 때의 느낌이란. 올해 학교 로비의 반 이상이 폭신한 롱패딩 속에 싸여서 걸어 다니는 학생들로 가득 찬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주제의 적합성에 대해 따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진 않았지만 너무 당황스러웠다. 수업 도중이라 인터뷰할 사람이 없어서 정문 밖으로 나가려고 언덕을 내려가는 순간 깨달았다. 답은 혹시 ‘추워서’가 아닐까? 정면에서 부는 찬바람에 몸이 저절로 백스텝을 밟아 로비로 되돌아왔다. 한국 사람이면 얌전히 위대한 발명품인 롱패딩을 구매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누구든 좋으니 금메달로 들어가서 이 과제 좀 자연스럽게 끝내줘...
사진출처_SBS 예능 ‘런닝맨’


건축과 기초설계

Q.
영화 주인공의 성격을
공간으로 나타내시오.

“엄마 나 주말에 집에 못 가. 과제해야 돼서.” 우리 과제는 기본 한 달을 잡고 시작한다. 주인공의 성격이 뭔지 생각하는 데 일주일이 걸리고, 도면을 그리는 데 일주일이 걸리고, 제작하면서 한 달을 채우게 되겠지. 지금까지 온갖 특이한 과제를 받아왔지만 매번 참 만만치 않다. 영화 <너의 이름은>
을 주제로 정하고, 단절과 연결 콘셉트로 계단이 많은 공간을 설계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주인공의 성격이 무난해서 발표할 때 의미 부여만 잘 하면 그럴듯해 보인다는 점. 옆에서 교양 함께 듣는 친구가 내 집 마련이 과제 주제냐고 물어봤다. 넌 다른 과라 모르는구나. 건축과는 산신령처럼 학교에 깃들어 있는 존재라 내 집이 필요 없어...! 
사진출처_ 영화 ‘건축학개론’
글_김희연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