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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호
배구 해설위원 김사니
다시 띄우는 제2의 배구인생 배구 해설위원 김사니
참 많이 힘들었다 이야기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배구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던 사람. 그 사랑에 보답 받듯 여자 배구 첫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됐다. 이젠 비록 그녀의 경기는 볼 수 없지만,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경기 전체를 보는 안목으로 배구 팬과 경기장 곁에 남았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 가득한 김사니 배구 해설위원을 만났다.


Q. 배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초등학교 때 제 통신표에 주의가 산만하단 얘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부모님 보시기에 공부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나 봐요.(웃음) 아버지가 제 통신표에 운동을 한 번 시켜보고 싶다고 적으셨대요. 하루는 수업시간에 배구부 감독님이 오셔서 저를 찾으셨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배구를 시작하게 됐죠. 솔직히 배구가 늘 재밌고 행복한 건 아니었어요. 세터는 책임감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포지션이니까요. 그래도 다른 친구들보단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도 줄넘기나 벽 언더(벽에다 하는 언더패스 훈련)에서 1등을 하려고 애썼죠. 그 욕심이 선수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Q. 여자 배구 국가대표로도 활동하셨죠.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A. 런던 올림픽 때 생각지도 않게 4강을 갔잖아요. 너무 행복했지만 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부담감은 커지던 상황이라 많이들 예민했었죠. 한 번은 김연경 선수에게 사인을 줄 때마다 거절하는 거예요. 윙공격수는 사인이 4~5개로 한정되어 있는데 받질 않으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좀 났죠. 그런데 세트 다 돌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 김연경 선수가 쫓아와서는 “언니, 미안해”라고 하더라고요. 공은 많이 들어오고 집중 마크되고 있던 상황에 제 사인도 계속 똑같으니 답답했던 것 같아요. 지금 얘기하면 기억도 안 난다면서 서로 그냥 웃어요. 당시에 안티들에게도 많이 시달렸었어요. 경기장 가는 동안 핸드폰으로 SNS를 하곤 했는데 페이스북에 욕설 메시지만 천 개 넘게 오곤 했거든요. ‘네가 안 한다고 해라, 네가 왜 경기를 뛰냐’ 하는 식으로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경기장 나서는 게 무서웠어요. 하나라도 실수하면 모든 배구 팬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았죠. 그렇게 3-4위 결정전 때까지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팀워크 하나는 참 좋았어요. 워낙 베테랑 선수들이기도 했고, 주장인 저를 선수들이 잘 따라줘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융화됐던 것 같아요.


Q. 배구에서 세터가 워낙 중요한 포지션인 만큼 고충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마다 어떻게 하셨나요?
A. 가끔 너무 힘들 땐 다 놔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배구를 그만둘 게 아니면 방황하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후배나 팀원들이 저를 보며 터닝포인트를 가져야 하는데 제가 흐트러지면 함께 동요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방황은 최대한 짧게 하고, 다시 솔선수범하며 팀을 위해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 후회하거나 미련 갖지 않도록 말이죠. 그게 때로는 제 자신을 더 힘들게 했던 같아요. 그래도 결과론적으로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내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Q. 얼마 전 배구 선수 은퇴를 하셨죠. 아쉽진 않으세요?
A. 전혀 아쉽지 않아요.(웃음) 선배들에 비해 오래 활동한 편이기도 하고, 언젠가부터 부상이 계속 왔었거든요. 다쳤던 종아리가 또다시 파열되고, 허리 때문에 주사를 맞고 휠체어를 타고 나왔을 땐 엄청 많이 울었어요. 이젠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내 욕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1년을 더 한들 연습에 100% 참여할 수 없다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게 맞는 거니까요. 아쉬워해주시는 분들 있을 때, 박수 쳐주실 때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되지 않아요. 오히려 시원하고 좋습니다.


Q.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전향하셨죠.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리우올림픽 당시 부상도 잦았고 자신감도 떨어져있던 상태라 출전을 거절했어요. 그때 구단을 통해 방송사 객원해설 요청이 들어온 거예요. 처음엔 거절했는데 당시 팀 이정철 감독님께서 전화주셔서는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른 길도 한번 봐라” 하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처음 경기 해설을 하게 됐죠. 근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주변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 후 본격 제안이 들어왔고, 은퇴하면서 해설위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죠.

Q. 평소 해설 준비는 어떻게 하세요? 해설위원님만의 중계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A. 우선 방송을 많이 보고, 남녀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분들의 해설을 들어요.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가는지, 나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꾸준히 체크하고 반영하죠. 또 중계마다 똑같은 패턴으로 해설하지 않도록 미리 계획을 세워 갑니다. 아무래도 선수 생활을 오래했고, 세터는 포지션 자체가 팀과 경기 전체를 봐야 하는 역할이라 해설 때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게, 선수 시절에는 상대팀의 단점을 보고 파고들 방법을 찾았다면, 지금은 각 팀과 선수들의 장점을 보게 돼요. 그리고 이걸 꾸준히 시청자들한테 전달하죠. 특히 경기에 많이 투입되지 않는 선수들이 잘 했을 때 많이 얘기하려고 해요. 대부분 인터뷰하는 선수들이 정해져 있다 보니, 해설을 통해서라도 여러 선수들의 이름과 좋은 점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선수들도 자신이 뛴 경기 해설은 다 찾아 들어요. 자신이 경기 들어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니터링하는 거죠. 저는 그냥 얘기하는 거지만, 선수들이나 선수 부모님들께는 큰 동기 부여가 될 거라고 봐요.


Q. 중계 시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우선 말이 겹치지 않게 눈치게임이 필요하고, 평소와 달리 방송용 언어를 써야 해요.(웃음) 얼마 전 경기 해설을 하는데, 선수들이 굉장히 유기적으로 잘 움직이고 본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멋져서 저도 모르게 “코트에 빵꾸가 나지 않네요.”라고 표현했어요. 캐스터님이 바로 ‘펑크’라고 정정해주셨는데 얼마나 민망했는지 몰라요. 또 중계는 할 때마다 떨려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장내가 너무 시끄러울 땐 캐스터님 얘기를 못 듣기도 하고, 경기가 급박하게 진행될 때는 당황할 때도 있죠. 이럴 때 전 스스로 주문을 걸어요. “누구든 다 어려워. 어쨌든 내가 해내야 하고 이 시간이 지나면 끝날 일이야. 그러니까 자신 있게 해보자.” 하고 되새김질하죠. 저를 포함해 모든 해설위원들이 한 경기 중계를 위해 참 많은 준비를 해요. 좀 더 좋은 방송을 하기 위해, 배구를 쉽게 알려드리기 위해 무던히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다 보니 실수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도 있어요. 조금만 더 예쁘게, 고운 시선으로 봐주신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

Q. 우리나라 배구 현주소를 진단한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세대 교체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선수들이 기량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줘야 하는 시기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야 성적도 나와요. 일본에 수십 번 지다가 런던 올림픽 예선전 때 이겨서 4강 진출까지 했던 것처럼요. 이젠 외국 선수들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선수들 신장이나 피지컬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아직 체력이나 힘은 부족해요. 외국 선수들은 워낙 타고나거든요. 선천적으로 타고 나지 못했다면 후천적인 노력이 있어야겠죠. 우리 선수들도 잘 먹고, 웨이트 트레이닝 열심히 하면서 철저하게 국제 경기를 준비한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국제 경기 전에 손발 맞출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도 평소와 다른 상황에서 연습 기간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Q. 캠퍼스 플러스를 읽는 청춘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세요.
A. 일단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스무 살 때 한 선배가 제게 어떤 차를 사고 싶냐고 물어봤어요. 그땐 차도 잘 몰랐고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죠. 선배는 제게 “예를 들어 네가 고급 차를 사겠다고 말해도 끝내 탈 수 없을지 몰라. 하지만 ‘그냥 소형차 타도 돼요’ 라고 말하면 그 수준까지밖에 가지 못할 거야.”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꿈은 정말 크게 가져야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평소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왔고, 현재 99%는 다 지켜진 것 같아요. 자신에게 어떤 꿈이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버킷리스트부터 잡아보세요. 다 해낼 수 없더라도 그렇게 나만의 기준을 잡으며 살아가는 거죠. 보다 더 행복해질 거예요.



김사니 배구 해설위원 연혁
1999년~2007년 한국도로공사 입단
2007년~2010년 KT&G 아리엘즈(현 KGC인삼공사)
2010년~2013년 흥국생명
2013년~2014년 로코모티브 바쿠(아제르바이잔)
2014년~2017년 IBK기업은행
2017년~현 재 SBS Sports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
*2012 런던올림픽 4강 진출
취재_임수연 기자, 김수연 학생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