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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호
작가 이민경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작가 이민경
‘페미니즘’은 지난해 가장 큰 이슈였다. 국내 출판 시장에는 2배가 넘는 페미니즘 책이 쏟아졌고, SNS에서는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핫 키워드로 등장한 페미니즘,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를 쓴 이민경 작가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Q.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하 「입트페」) 출간을 통해 페미니즘 활동을 시작하셨죠. 계기가 따로 있나요?
A.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었지요. 그 사건을 두고 남녀 간 논쟁이 벌어졌었는데 여성들이 너무 밀렸어요. 속상하고 화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고전했던 거죠. 여성들이 원치 않은 싸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상처 입는 것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제 친구들을 붙잡고 어떻게 말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몇 시간씩 설명해줬어요.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친분을 떠나 많은 여성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다가 마침 여성영화제 시즌이기도 해서 전단지 같은 인쇄물을 계획했어요. 준비하다보니 분량이 많아졌고 책으로 만들어졌죠. 처음부터 책을 내려했던 게 아니라서 글 쓸 때 망설이거나 어렵지 않았어요. 어떤 형태든 여성들에게 빨리 전달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마음 맞는 친구들과 ‘봄알람’이라는 페미니즘 출판사를 세웠고 「입트페」가 출간됐네요.

Q. 「입트페」가 페미니즘 대표 서적으로 불릴 만큼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독자평이 있나요?
A. 사실 「입트페」가 이렇게 사랑받을 줄 몰랐어요. 남성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법을 알려준다기보다는 페미니즘적 언어가 뭐고 왜 필요한지, 우리가 이 언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죠. 그중에서도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부분이에요. 여성들은 누군가 말을 걸면 당연하다는 듯이 응대를 해요. 공손하게 감정 노동을 해왔던 거죠. 그래서 제 책을 보고 이제야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는 분도 많아요. 이외에도 「입트페」를 통해 페미니즘을 처음 알았다는 분, 책을 늘 품에 넣고 다닌다는 분도 계세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Q. 「입트페」 출간 당시와 지금, 페미니즘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시나요?
A. 확실히 페미니스트가 많아졌습니다. 낙태죄 폐지 청원에 23만 명이 모인 것도 페미니스트의 확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묻히기 십상인데,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적 사고와 문제의식을 가짐에 따라 힘을 얻게 된 거죠. 이렇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법제화와 예산 편성도 빨라질 거예요. 차츰 사회 변화에도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Q.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라고 하죠. 그 맥락에서 최근 출간하신 책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A. 일반적으로 임금차별이라 하면, 같은 직장에 남녀가 동일 입사했을 때 받는 월급만 생각하기 쉬워요. 그래서 “나는 여자들만 있는 직장이라 안 그래”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는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일평생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있음을 알리는 책입니다. 채용부터 승진까지 수많은 차별 속에서 여성은 갖은 노력을 해야 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어요. ‘동일 직급=동일 임금’ 원칙은 지켜질지 몰라도 ‘동일 직급=동일 능력’은 아닌 거죠. 이런 부분이 결국 경제적 손실로 나타나는 거고요. 또한 몇 년 전 중앙대 전 이사장이 분 바르는 여학생은 뽑지 말라고 지시 내렸던 적이 있어요. 그때 떨어진 여성이 더 낮은 대학을 갔다면 학벌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취업에도 영향을 끼쳤겠죠. 한 사람의 경제권과 삶에 나비효과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걸 단순히 ‘차별 받았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밖에도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 높은 비정규직 비율, 경력 단절 등 수많은 요소들이 경제 문제로 이어져요. 단순히 급여가 적은 게 아니라 생활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것이죠.


Q. 그렇다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임금차별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A. 페미니즘과 관련해 여성 안전이나 언어 차별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되지만, 경제 분야는 면밀하게 나오지 않는 것이 늘 아쉬웠어요. 책을 쓴 이유도 담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죠. 임금차별을 개인 경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사례를 찾고 공적 담화로 발전시켜야 부당했던 부분들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고 드러내야 있는 제도도 힘을 발휘하고, 없는 제도도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물론 각각의 단계를 여성들이 꼼꼼히 감시하고 지적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Q. 최근 페미니즘 안에서도 의견이 나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되어야 할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페미니즘을 주제로 친한 친구들과 의견을 나눠도 다 달라요. 그저 관점의 차이일 뿐이죠. 기본 원칙은 여성의 삶이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니까 잘해줘라’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그것이 단순히 기분 나쁨을 넘어서서 목숨을 위협받기도 한다는 점, 임금차별과 낙태죄 등 여성을 둘러싼 남성중심사회의 통제에 맞서 자기 삶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방법에 따라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 내 페미니즘과 다르다고 싸우거나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나가면 되죠.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다만 대원칙과 관련해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페미니즘의 지향점이 ‘성차별이 없는 세상’이지만 때로 ‘반남성주의’로 오인받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어떤 남성은 제 책을 보고 ‘과격하다, 너무 화가 나있다’ 고 하고, 어떤 여성은 ‘너무 조곤조곤하다’고 말합니다. 제가 누구 편에 서서 이야기하는지 확실하게 말해주는 거죠. 페미니즘은 기존 남성중심주의 질서에 배치됩니다. 사사건건 남성중심주의 사회와 어긋나는 말들이다 보니 남성 입장에서는 거북하고 과격하게 들릴 수밖에 없죠. 솔직히 말해 남성들의 반감은 늘 있었습니다. 한때는 100인위(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 운동)로, 한때는 꼴페미로, 지금은 메갈리아가 좋은 구실이 되고 있죠. 거슬러 가면 신여성까지 나와요. 일련의 패턴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남성에게 메갈리아처럼 보일까봐 두려워하지 마세요. 메갈리아는 아닌데 페미니즘은 관심 있다면 자기 생각을 따르면 됩니다. 한국 여성들은 유순하고 자기 의견 표현 못하도록 자라왔습니다. 이제는 화내고 분노했으면 해요. 그게 남성중심주의에 반하는 것이면 어떤가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20대 청춘들과 관련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A. 임금이죠. 때로 “나는 돈보다 다른 가치가 더 중요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임금은 가격의 높낮이가 아니라 생존 문제입니다. 1인 여성 가구 중 한 달 300만 원 이상 버는 사람은 7%에 불과해요. 여성 연봉은 29세에 가장 높아졌다가 떨어집니다. 남성보다 여성의 수명이 훨씬 긴데 적은 돈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돼요. 취향의 문제처럼 돈에 관심 없다고 할 때가 아닙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뭘 놓쳤는지, 앞으로 뭘 놓치게 될 것인지 알아놔야,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불리함을 알아챌 수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 취업준비생들이 전부 반기를 든다면 변화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Q. 대한민국 페미니즘은 얼마나 왔다고 생각하세요? 앞으로의 페미니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A. 굉장히 빠르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어요. 예를 들어 강남역 사건 때만 해도 낙태죄 폐지 시위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얼마 안 있다가 했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희망적으로 봅니다. 단, 여전히 많은 학교와 회사에서 여성 차별이 발생하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줄면 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성폭력 개념을 제대로 인식한 게 1995년입니다. 성폭력 반대 흐름이 빨리 사라졌다면 관련 제도와 의식에도 반영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럼 지금 우리는 95년 이전의 삶을 살고 있었을 테죠. 페미니즘 담론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Q. 페미니즘 활동하시면서 목표가 있으시다면?
낙태죄 폐지가 우리 세대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의 대중화도 중요한 성과지만, 제도적인 결실이 있어야 그것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낙태죄 폐지는 임신 계획이 있든 없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졌다면 모두 신경 써야 하는 문제입니다. 낙태의 좋고 싫음이 아니라, 낙태하는 여성을 국가가 징역 살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강간당해도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없고, 불법이라는 이유로 암암리에 숨어서 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여성도 많습니다. 여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제도 폐지를 외쳐야 합니다. 저는 현재 유럽의 페미니즘 관련 단체들과 낙태죄 폐지를 위한 출판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그들과 직접 만나 어떻게 낙태죄를 폐지했는지, 또는 폐지를 위해 어떤 노력 중인지, 폐지 안 된 이유는 무엇인지 관점을 교류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임금차별 해소를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나갈 계획입니다.


이민경 작가 저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봄알람 / 2016.08.22.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봄알람 / 2016.09.30.
「대한민국 넷페미史」 공저 / 나무연필 / 2017.01.10.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 봄알람 / 2017.10.23.
취재_임수연 기자, 김희연 학생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